#13: 왜 어떤 제품은 뇌리에 박히고, 대부분은 기억에서 휘발되는가? (feat. 스토리텔링 방법론)
사람, 제품, 광고를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스토리텔링 방법론을 일상에 적용하는 방법
안녕하세요. 진양입니다.
저는 책상에 앉기보다 소파에 눕기를 좋아하는 일반적인 현대인입니다.
모닝커피가 없다면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조차 못 하고요. 주말에는 밀린 잠과 유튜브를 봐야 하므로 정오 전까지는 잠수상태입니다. 누구보다 게으르고, 들쭉날쭉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저도 단 하나의 루틴은 있습니다.
주중 아침에는 눈을 뜨면, 눈곱만 떼고 주섬주섬 검은 아디다스 운동복과 분홍색 물통(!)을 들고 크록스를 끌며 집 앞 커피숍에서 아아를 한 잔 주문합니다.
몇 달 동안 꾸준하게 똑같은 시간에 가다 보니, 카페 사장님과 알바분들은 당연히 절 기억합니다. 누가 봐도 동네 백수형 같은 복장을 하고, 핑크 물통을 달랑거리며 같은 시간에 찾아오는 손님은 너무 기억하기 쉽잖아요?! 저 또한 어느 요일에 무슨 알바분이 근무하시는지 대강 알 정도로 내적 친밀감이 생겼고요.
평소에 제가 입구에 들어서면 사장님은 제 핫핑크 물통을 건네받으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맞으시죠~? 진양 님 포인트에서 차감할게요~😃”
라며 친근한 미소와 함께 말하며 제 모닝 포션을 제조해 주십니다.
마치 회사라는 혹독한 사냥터를 나가기 전에, 마을에서 버프 넣어주는 바드 NPC 같다고 해야 할까요?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제 하루의 소중한 조각이 되었죠.
아니, 근데 최근에 한번 이 핑크 물통을 까먹고 카페를 방문하게 된 날이었어요. 늦잠을 자버려서 급하게 뛰쳐나오느라 제 핑크 물통을 까먹고 안 챙겨서 내려왔어요. 뒤늦게 다시 올라갈지 했지만, 이미 늦어서 곧장 카페로 달려갔죠.
너무 익숙하게 사장님과 인사를 주고받고, 평소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죠. 시간이 흐르고 커피가 완료되었을때..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4,000원입니다~🥺”
사장님이 저를 완전히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 거예요!! 설마 저를 못 알아봤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로 멀뚱멀뚱 서로 쳐다보고 있었어요.
한 3초 정도? 체감은 거의 한 10초..
“어어…. 네..! 저 진양이에요, 포인트에서 차감해주세요..🫣”
그제서아 사장님은 놀란 듯, 토끼 눈을 하며 핑크 물통이 없어서 저를 까먹었다고 했어요. 그날의 커피는 뭔가 유난히 더 쓰던 거 같기도 하고요. 큰일 아니지만 씁쓸한, 그런 멜랑꼴리한 느낌이랄까요.
그러다가, 카페를 나서며 걷다가 문득 든 생각…!
내가 핑크 물통으로 기억된다면, 내 제품은 어떤 원리로 기억되는가?
씁쓸하게 길을 걷던 와중에, 사람은 어떻게 기억되는지, 제품은 어떻게 기억되는지, 왜 어떤 이야기는 오래 기억에 남고, 어떤 이야기는 만남이 끝나자마자 휘발되는지가 궁금해졌어요.
무수히 많은 제품을 실험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본 제가 쓰기에 매우 적합한 주제 같았어요.
이 비밀을 해독하고 나면 그 어떤 제품을 만들더라도, 고객에게 머릿속에 각인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새로운 보물 지도를 찾은 해적처럼, 단서들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친숙한 [ ]에 던지는 색다른 [ ]
동네 백수 차림새의 남성이 들고 다니는 핑크 물통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익숙한 상황(백수 차림새 손님)에서 색다른 반전(핑크 물통을 애용하는) 특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숙함과 의외성이 공존했을 때 사장님의 머릿속에 훅하고 들어가 휘발되지 않는 기억에 자리 잡게 된 것이죠. (부작용으로 핑크 물통만 남아버렸지만….)
저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기억하는 메커니즘이나, 제품이나 광고를 기억하는 메커니즘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위 프레임워크를 적용한다면, 제품의 경우 익숙하고 흔한 문제를 색다르게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다면 기억에 오래 남겠죠. 빅테크에 너무 많은 예시가 있어서, 딱 하나의 제품을 예시 들기도 애매하네요. (우버, 에어비앤비, 등등).
위 방법론은 글쓰기에도 적용이 가능하죠. 제가 애용하는 방법입니다. 익숙한 주제를 다루지만, 조금 색다른 접근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하죠. 예를 들어보자면:
이처럼, “친숙함과 의외성의 조합”을 통해서 타인의 기억의 각인시키는 방법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적용이 가능합니다. 그중 제가 애용하는 분야는 ‘신제품, 광고와 컨텐츠’이지만, 독자분들께서도 사용 사례를 알려주세요!
범용적인 이유는 인간의 본능적인 활동 영역에 속하기 때문
“친숙함과 의외성의 조합”을 통해서 기억에 각인시키기는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방법론입니다.
왜냐하면, 이 방법은 인간의 매우 본능적인 영역을 건드리기 때문이죠.
아직 상대방은 마음의 준비도 안 되었는데, ‘더 좋은 방법’을 제시하며 상대방을 함부로 바꾸려 들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표출합니다. 그렇기에 친숙함을 통해서 상대방의 경계를 풀고, 의외성으로 상대방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이죠.
만약 상대의 주의를 집중시켰다면, 절반은 성공했습니다. 이제 나머지 반이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 글 주제: 주의를 집중시킨 상대방의 기억에, 스토리텔링으로 정보 인덱싱시키기
스~~토리텔링..? 아니아니, 잠시만 한번 들어봐요.
스토리텔링 마케팅 많이 들어는 봤지만, 정작 창업자나 마케터들은 어떻게 실용적으로 적용하는지 알쏭달송해요. ‘적절한 이야기를 적절하게 활용해서 원하는 바를 이루는’ 행위는 가장 오래된 커뮤니케이션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너무 가볍게 생각해요. 그냥 고객들의 후기 주야장천 나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수두룩하고요. 애초에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스토리텔링 플레이북을 꺼내야 하는지 모르는 리더들이 대다수에요.
인간의 기억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저장되어요 (human memory is story-based). 위 핑크 물통의 이야기가 여러분들 머릿속의 각인 된 이유도, 간단한 이야기의 플롯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발단: 진양이라는 인물의 서술과 함께 단골 커피숍과 감정적 라포 배경까지 소개
갈등: 하필이면 핑크 물통을 못 가지고 나오게 된 상황
절정: 진양을 알아보지 못하는 단골 커피숍 사장님, 부끄러워하는 진양
친숙함과 의외성으로 주의를 끌어서 상대방의 단기기억 슬롯에 저장시켰다면, 이야기를 통해서 감성적 울림을 제공하고 장기기억 슬롯에 저장시켜야 해요. 많은 연구가 증명하듯, 사실만 제공되는 컨텐츠에 비해,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는 컨텐츠가 ~22배 더 잘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이죠. 스토리텔러의 목적에 맞춘 스토리를 구성하고, 감성적 울림을 통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해요.
다음 글에서는 독자님들만의 스토리텔링 플레이북을 통해서, 창업자, 마케터, Problem Solver 들이 목적에 맞는 스토리텔링 전략을 기획할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진양 뉴스레터 구독을 하면, 느리지만 차근차근 실용적인 방법론 찍먹이라도 할 수 있게 판을 깔아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독자님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싶어요! 알면 더 유용한 컨텐츠들을 많이 작성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대화하면서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단톡방을 하나 팠습니다! 휴게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오셔서 수다떨고 그러시죠.
Ref.
고창수. (2009). 스토리텔링 기법을 응용한 설득 글쓰기 전략. 우리어문연구,(33), 453-468.
Fryer, Bronwyn. "Storytelling that moves people." Harvard business review 81.6 (2003): 51-55.
Denning, Stephen. 2011. The Leader’s Guide to Storytelling: Mastering the Art and Discipline of Business Narrative. Jossey-Bass, San Francisco.
다음글 엄청 기다리게 되네요! ㅎㅎㅎ 저는 우선 의외성으로 후킹 포인트부터 찾아야 겠지만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