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기 부가세 신고 기간이 지나면서 슬슬 근황을 업데이트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글을 쓰게 되었네요.
늦어서 죄송한 마음을 담아 재미있는 글을 가져왔으니, 노여움을 풀어주세요.
반년의 회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2024년이 시작되자마자 4,000만 원을 주고 작은 온라인 사업체 두 개를 인수했습니다.
반년 정도 지났죠.
이제 반년 동안 열심히 굴린 작은 사업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되돌아볼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디에서도 이렇게 적나라하게 자기 법인의 약식 손익계산서와 이 여정을 공유하는 곳은 아마 흔치 않을 겁니다! 있나요?? 있다면 댓글 주세여… 저도 보게…
그나저나, 왜 두 개나 샀을까요?
처음에는 하나로 시작했어요.
작은 스마트스토어와 자사몰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의 재고, 거래처, 판매채널 등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시작했죠.
적당히 업무에 익숙해지고 나니 또 다른 매물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시너지가 날 것 같은 사업체가 있었어요.
이론적으로는 비슷한 고객 풀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고객을 공유하면 매출에 폭발적 시너지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데...
뭐, 많은 고생을 했죠… 볼트온 전략이니 뭐니 따라 해보려다 결국 뱁새 가랑이가 찢어졌네요.
시너지 내는 건 쉽지 않았고, 그냥 두개의 캐시플로우로 남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매출이 잘 유지되어서 다행이었어요.
전에 쓰던 라노벨은?
처음엔 이 여정을 거대한 서사로 풀어보려는 욕심이 있었어요.
라노벨 느낌으로 거창하게 써보고 싶었지만, 역시나 창작의 고통은 상상 그 이상이더군요.
그래서 다시 일상적인 회고의 느낌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소소하면서 중간중간 피식 웃을 수 있는 일기가 저한테는 더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요약: 1기 매출 ₩150,648,740. 회수까지 6개월
자, 긴 말 필요 없이 숫자부터 공개할게요.
1월부터 6월까지 두 브랜드 합쳐서 매출이 ₩150,648,740, 즉 1.5억 정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판매 관리비 중 가장 큰 항목이었던 광고선전비(마케팅 비용)가 ₩7,503,881, 대략 800만 원 정도 들었고요.
동대문에서 사입한 아동 물품 특성상 원가율이 65-70%로 계산했을 때, 1기에 남은 돈은 ₩37,690,741, 대략 4천만 원 정도 남았네요.
영업권 인수에 4천만 원을 썼으니, 이제부터 남는 이익은 모두 제 주머니로 들어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양말과 타이즈 특성상 하반기에는 대목이라 연말까지는 매출이 3억에서 4억 정도 나올 것 같아요. (회망편)
물론 갑자기 어느순간 매출이 뜨억락해서 휴지조각 될지 모르죠.. (절망편) 그래도 그 추운 겨울에 발품 팔며 서울과 경기도를 횡단하며 매물을 찾은 보람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괜찮았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있죠
그래도 갈 길은 멀어요.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성과를 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매출원가의 개선
일단 가장 큰 문제는 매출원가입니다.
동대문과 남대문에서 사입하는 아동 물품 특성상 원가율이 매우 타이트하게 잡혀 있어요.
물론 나중에 자체 브랜드를 만들거나 해외로 판매하면 최적화가 가능할 텐데, 아직 시장과 고객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서 성급하게 제조로 뛰어들진 않기로 했습니다. 첫 사업에서 자체 브랜드 제품 제조로 시작했다가 크게 데인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보수적으로 접근 중입니다.
제로섬 게임의 오픈마켓 무한 경쟁을 떠나기
온라인 세상의 권리금을 현실로 비유하자면, 월간 검색량은 식당 앞을 지나가는 유동인구이고, 내 상품이 걸리는 페이지와 순위는 번화가 메인 도로에 있는지, 안쪽 골목에 있는지에 달렸다고 보면 돼요.
다만, 오픈마켓이라는 상권은 알고리즘에 따라 그 순위가 변동하기 쉽기에, 적절한 가치를 평가하기도 힘들고 경쟁이 매우 소모적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고부가가치를 제공하는 사업 모델을 추가해 현금 흐름을 개선해야 합니다.
해외에서 유행하는 신규 유아 브랜드의 총판을 따내거나, 유아 시장 기반의 서비스나 플랫폼 같은 IT 솔루션을 접목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IP 플레이북을 사용하거나, 커뮤니티 접근법을 활용하는 것도 괜찮겠네요.
그래도 위는 해결 가능한 문제들…
결국 위의 문제들은 모두 해결 가능한 영역이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아요.
매출만 유지된다면 비용 최적화와 부가가치 창출 방법은 충분히 있으니까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제가 이 유아 및 아동 시장에 애착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장에 대한 애착이 없다 보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사업체를 일정 수준까지는 성장시킬 수 있지만, 그다음 단계로 10배 성장시키려면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와 투자가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이 시장에 마음이 잘 가지 않다 보니 그 마지막 단계를 딛기가 어렵더라고요.
제가 이 시장을 조금만 더 좋아했으면, 유아 브랜드를 만들거나, 완구를 출시하거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아기 건강기능식품을 개발하는 등의 일을 시도 했을 것 같은데.
결국 좋은 브랜드는 고객과의 공감에서 나오는데, 이걸 제가 하는 게 맞을까 고민이 되는 거죠.
그럼 내가 정말 하고 싶던 건 뭐지?
나는 창업 그 자체를 사랑한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왜 이 사업을 하고 있는 걸까? 왜 내가 매일 양말을 포장하고, 시장에서 물건을 사와서 포장하고, 머리를 싸매고 있는 걸까?
긴 고민 끝에 알게 된 건, 나는 창업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거였어요.
진흙 속 진주 같은 사업체를 발굴하고, 그 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설정하며, 그 과정에서 내 판단이 맞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 과정은 도박과도 비슷해요. 6개월짜리 도박이죠. 시간과 돈을 투입해 내 판단이 맞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랄까요. 물론 여기서 창업 경험이라는 사이드 이펙트도 얻고요.
블랙잭을 아무리 많이 해도 쌓이는 경험치라고는 별로 없잖아요. 기것 해봐야 웨이터 크게 부르는 실력정도..? 그렇지만 창업은 다릅니다.
새로운 도메인과 시장을 알게 되고, 해당 상품의 유통 시장과 키 플레이어들에 대한 인사이트도 생기죠. 아니, 도파민도 맛보고 돈도 벌고, 이거 완전 러키비키잖아요?
이제 더 큰 사업체도 굴릴 수 있을 것 같다!
반년 동안 유아 시장에 매몰되어 있다가 최근에 연매출 20억짜리 도매 사업체가 너무 싸게 매물로 나와 있는 걸 보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어요. 매출 20억짜리 회사를 5억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다니!
영업이익률이 낮고 비용이 과하다 해도, 탑라인이 3년 연속 20억대라면 개선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미팅을 요청했죠.
도착해보니 100평이 넘는 창고에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시끄럽게 돌아가는 팬들, 방치된 지게차와 부자재들… 사무실에서 코딩만 하던 저로서는 상상도 못 해본 물리적 규모였어요.
충분히 압도될 만한 상황이었지만, 지금 내가 굴리는 사업체의 7-8배 정도 되는 규모라고 생각하니 불과 반년 전만 해도 겁먹었을 텐데, 이제는 할 만하겠다 싶더라고요. (자만인가..) 물론 지금은 사업체를 이미 가지고 있으니 힘들지만, 처분하고 난 뒤에는 더 큰걸 해보고 싶더라고요.
정리하자면…
6개월 동안 인수와 안정화 과정을 통해 엄청나게 성장했다
지난 6개월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저도 많이 성장했어요. 창업가로서의 성장뿐만 아니라, 작은 온라인 사업체 양수와 양도 경험도 많이 쌓았습니다.
인수한 사업체는 안정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고, 이제는 유아 시장에 애착이 있는 새로운 운영자를 찾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유아 시장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고 싶은 분이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세요!
나는 작은 사업체의 MD, 마이크로 PE가 되겠다
저는 앞으로 마이크로 PE, 즉 작은 온라인 사업체들을 사고파는 장인이 되고 싶습니다. 알짜 온라인 사업체를 떠올릴 때 바로 생각나는 그런 사람이요.
제가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국내 창업판에서 작은 사업체들의 유동성을 제공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제 뉴스레터는 창업 일지와 더불어 작은 사업체 매물들을 분석하는 콘텐츠가 될 것 같습니다. 금융사의 매수매도 리포트보다는 더 사람 냄새 나는 글로요. 제가 직접 실사를 나가보고, 숫자들을 공유하며, 장단점과 위험 요소를 정리하는 글을 써볼 생각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 자주 뵐게요!